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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여행 삶/이민

캐나다 런던 의료 시스템 체험 : 심근경색으로 죽다 살아난 이야기(2/2)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 사람 최우선, 우선 살려 놓고 본다."

 

마취로 의식을 잃고 다시 깨어나기 바로 전에 내가 느낀 것은 그냥 암흑이다.  깜깜함 그 자체이다.  그러다 이상한 꿈을 꾼 것같은 상태로 눈을 뜬다.   의식이 돌아오고 제일 처음 느꼈던 것은 고통이 아니라 숨 막힘이었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고통은 이상하리만치 없었다.   숨 막힘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러다 숨 막혀 죽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만큼 심했다.   의사는 지금 니 몸에 관을 박아 넣은 것 때문에 그런 거고 나중에 빼 주면 괜찮다는데 지금 당장 나는 숨을 쉬기가 너무 힘들었다.    식사가 나왔다.  식단을 보곤 참 기가 막혔다.  빵 한 조각, 우유 한 개, 싸구려 주스 하나, 버터 하나, 잼 하나...   수술 지금 막 끝난 사람한테 이걸 먹으라고?    배가 고팠으므로 빵을 한 입 물었으나, 도저히 못 먹겠다.  아내에게 부탁해 죽과 포도를 먹고 싶다고 했다.  죽과 포도가 참 맛있었다.   잠이 간신히 들면 정말 심난한 꿈을 꾼다.  굉장히 어둡고 침침한 그런 배경의 꿈이 연속된다. 그러다 깨고 다시 잠들고 반복이다.    첫날은 중환자실에 있었다. 

참 추웠다.  왜 그리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놓는 건지 참 추웠다.  간호사에게 부탁해 따뜻하게 데운 담요를 가져다 달라고 계속 그랬다.   금방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담요를 덮으면 꽤 따뜻해진다.  놀란 것은 내 옆에 상주하며 붙어있는 간호사가 세 명이나 되었다.   처음에 나는 불안했다.  수술이 뭔가 잘 못되어서 이렇게 많이 붙어 있는 것인가 싶어서다.   중환자실에 나만 있는데 말이다. 

 

다음날, 링거병 달린 삼발이를 밀면서 살살 걸어서 화장실을 갈 정도였는데, 20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간호사가 오더니 샤워를 해야 한단다.  헐....  가슴을 열어보면 아직도 피가 줄줄 흐르는 중인데 샤워는 무슨 샤워?   게다가 지가 씻겨 줄거니깐 걱정하지 말란다.  그러면서 환자복을 벗으란다. 샤워실까지 들어와서.... 난감하다.   간호사에게 내가 씻을 테니 나가라고 하니 "Are you Sure?" 라며 걱정 반, 기쁨 반의 묘한 표정으로 나간다.   샤워를 하는데 가슴에서 피는 계속 흐른다.  그래도 희한한 것은 통증은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따가울 줄 알았는데....

그리곤 무슨 검사를 몇가지 했는데 환자들이 줄을 서있는 곳에서도 나는 최우선으로 가서 검사를 했고, 그냥 다 통과다.

기다린 적이 없다.  그리고 하나 알게 된 것은 의료 장비들이 최신이며, 정말 훌륭하다는 것이다.

다음날, 젊은 의사가 둘이 오더니 한 의사는 나에게 뭐라고 연신 떠들고, 한 사람은 가슴에서 뭔가를 꺼내는 듯했다.  바로 가슴에 박았던 관을 빼는 것이었다.   감각이 없는 건지 또 모르핀을 놓아서 그런 건지 아픈 통증은 없고, 뭔가 기분 나쁜 느낌만 들었다.   그 관을 빼고 나니 한결 숨쉬기가 수월해졌다.   조금 있다가 닥터 키야가 와서 "수술 잘되었다.  걱정할 것 없다.  어디 불편한데 있냐?"  그래서 내 왼손의 상태가 언제쯤 되면 정상으로 돌아오냐고 물었다.   1년쯤 지나면 괜찮아진단다.   그러더니 갔다.   그리고 같이 옆에 있었던 젊은 의사가 내게 와서 니 그 손 평생 그런다고 말한다. 

이 개늠색히 뭐라고?   닥터 키야가 1년 지나면 괜찮다고 했는데 뭔 소리?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지만 닥터 키야는 나에게 구라를 친거다.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그랬든, 자기가 수술을 잘한 것이라는 걸 내세우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든 구라를 친 건 맞다.   기타 코드를 잡고 2분을 버티지 못한다.  아직도.   

 

다음날, 나는 퇴원을 한다.   한국 같으면 최소 일주일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가란다.  괜찮단다. 

 

퇴원 후, 5개월쯤 흘러서 겨울이 오려했을 무렵, 찬바람을 맞으면 정도는 약하지만 턱관절 통증(이것을 소위 Joe Pain이라 한다.  남자의 경우 전형적인 심근경색 전조 증상이란다)이 발생한다.  며칠을 견디다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   검사 결과, 한쪽의 연결 동맥의 피 흐름이 원할치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수술을 해야 하냐고 하니깐, Stents Procedure(수술은 수술인데 일반 수술과는 다른 그래서 Surgery라고 안 하고 Procedure라고 한단다.)를 한다고 한다.

시술은 비교적 간단했다.  마취도 선택하라 해서 전신마취 안하고 스크린으로 보고 싶다고 했다.  의사 3명이서 시술을 했는데 서로 떠들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시술을 한다.    나는 불안해 죽겠구먼, 개늠들....

너무 간단한 시술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매우 위험한 시술이란다.  나중에 들어보니.....

바이패스 수술 때, 예정보다 3시간 수술을 더한 이유가 이것이 아니었나 싶다.  즉, 한쪽 바이패스가 제대로 안된 것이다.   그래서 내 심장 근처 동맥엔 내 왼손에서 절단해 붙인 동맥들과 3개의 스텐츠가 박혀있다. 

 

그 시술 후, 다시 그런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고, 6개월쯤 지나서 육체적으로는 거의 회복이 된 것 같았다.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내가 왜 이런 수술을 받았어야 했나?   어떻게 내가 이 나이에 심근경색일 수 있나?   나에겐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인데.....   수도 없이 되뇌이며 뭔가 원망해야 하는 꺼리를 찾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별 말 아닌데도 괜히 서럽고 왠지 서운하게만 들리고, 화가 나고, 서글프고..... 그랬다.

이때 참 회복하기 힘든 상처들을 많이 받는다.   온전치 못한 마음 상태에서 생긴 마음 상처라 회복이 되면 치유될 것 같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아무리 마음 상태가 온전치 못한 가운데 생긴 상처라 해도 지금도 회복이 완전히 되진 않는다.

수술을 한 지 10년이 넘어가지만, 이때 받은 상처는 평생 아물 것 같지 않다.  지금도 가끔은 그 아픈 상처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있다.   몸은 6기 통뿐이 안 되는 상태지만, 탁구도 몇 시간을 쉬지 않고 칠만하고, 그럭저럭 수영도 할 수 있으며, 골프도 칠 수 있다.    내 꿈인 젊은이들처럼 배낭여행을 가고 싶은 것도 5개월 전 쿠바 여행을 통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몸은 회복이 된 것 같은데 마음은 10년의 세월로도 회복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나는 다음 생이 있다거나, 천국과 지옥 같은 것이 있다거나 그런 것들을 믿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건 내가 아닐 것이기에 상관없다.  상관이 있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수술 후, 나는 더욱 그런 생각들이 굳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란 인간의 삶은 오로지 단 한 번뿐이다.  젊었을 때, 좀 더 많이 젊었을 때 이런 생각이 지금처럼 들었다면, 나는 달리 살았을 것이다.   내가 배워온 많은 가치와 이념들이 다 생 구라라는 것을 하나씩 확인해 갈 때마다 내 젊음에 대한 연민에 사무친다.  

 

CARPE DIEM !   You Only Live Once !